칼럼

과거를 현재형으로 말한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0-09 18:16
조회
422
과거를 현재형으로 말한다.
2009/04/20

초기에 애틀란타에 정착해서 성공한 분들로부터 듣는 이야기가 대부분 비슷합니다. 이곳에 와서 겪은 일을 들을 책으로 엮어도 여러 권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어려움과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 또한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민족입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차별대우와 모진 박해를 받았습니다. 구라파의 여러 나라들은 유대인들을 게토(ghetto)라는 제한구역에 몰아넣고 울타리를 둘러쳤습니다. 아마도 아파트(APT)의 시초가 게토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려니 아파트 형태의 주거지를 만들 수밖에 없었고, 오늘날 아파트처럼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되지 않았으므로 지저분하고 냄새가 났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좁고 지저분한 곳을 ‘게토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게토에 살면서도 다른 넓은 세계보다 역동성(逆動性)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면서도 교육에 남다른 공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교육을 통해서 현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들의 혹독한 과거의 역사를 존중하고 가르쳤습니다. 과거의 시간을 견디고 이긴 자만이 내일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미러가 필요한 이유?

우리가 자동차 운전을 할 때에는 백미러(back mirror)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백미러는 뒤로 달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달리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달려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위치도 중요하지만, 뒤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길에 앞에만 장애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좌우(左右)와 뒤에서도 언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회가 상상 못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가 미처 따라가기에도 숨이 찹니다. 그 때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식 기도는 언제나 과거를 회상(回想)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애굽의 종되었던 과거를 돌아볼 때에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고 앞으로 나갈 방향을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도운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앞으로도 우리의 걸음을 도우시고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삼상 7:12).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유대인의 미드라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천 년 전 모세가 시내 산에서 토라(모세오경)를 받을 때에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유대인의 영혼이 거기에 모여 하나님으로부터 토라를 받고, 하나님과 함께 토라의 세계를 이루기로 서약을 했다’ 그렇다면 모든 유대인은 이미 수천 년 전에 모세와 함께 토라의 서약을 했다는 말이 됩니다.
유대인들에게 토라는 지금도 여전히 진리입니다. 진리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성경 히브리어에서 시간 개념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와 같기 때문입니다(벧후 3:8). 그러므로 유대의 랍비들은 옛날 랍비들의 말을 전하면서 과거형으로 말하지 않고, “랍비 아무개는 말한다.”라는 식으로 현재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진리란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것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좁은 게토에 갇혀있으면서도 과거의 뼈아픈 시간에 정복당하지 않고, 현재의 거대한 세력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바깥의 넓은 세계를 정복해갈 수 있었습니다. 다른 세계의 사람들은 현실을 믿고 분량을 믿었지만, 변치 않는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현재가 가득한 삶

지금 우리 앞에 엄청난 장애물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바깥의 소용돌이치는 넓은 세계에 비해 우리는 보잘것 없는 게토에 갇혀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어보입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지금 왜 이곳에 와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역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자랑스러운 역사보다는 쓰리고 아픈 과거를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위기를 만나고 어려움을 겪을 때에 우리의 뒤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는 진리인 토라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붙잡힌 시간의 포로가 아니라,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과거의 아픔과 영광의 미래를 끌어다가 현재화할 수 있는 비밀을 아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비밀을 아는 자는 오늘 살다가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는 현재가 가득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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