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Shindike)과 유언(Diadeke)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0-09 19:38
조회
249
언약(Shindike)과 유언(Diadeke)
2009-10-12

제가 전도사 시절에 존경하던 안수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이 분을 존경하고 아직까지 생각나는 이유는 물론 그 분이 저를 좋아하고 아껴 주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 분이 저보다 더 겸손하고 온유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분은 최고의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대림건설의 이사로 재직하면서 고등부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셨습니다. 이 분은 언제나 겸손함을 잃지 않고, 인자한 미소로 학생들을 가르치셨기 때문에 고등부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암에 걸려서 암과 투병하시던 중에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집사님이 죽음을 앞두고 부인과 자녀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길 유언을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두고두고 생각나게 할 최고의 멋진 유언을 남기려고 고민하고 기도하기를 계속했답니다. 자그마치 10년 동안 이 일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얻은 결론은 ‘유언은 유언을 하지 않는 것이 진짜 유언이다’는 것이었답니다. 저는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그 분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한 참 후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청개구리의 유언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반대로만 행동하는 청개구리가 있었습니다. 아들 청개구리는 엄마 청개구리가 동으로 가라하면 서로 가고, 강으로 가라하면 산으로 갔습니다. 아들 개구리의 이런 행동을 알기에 엄마 개구리는 지혜로운 유언을 생각했습니다. 이제 자신이 죽으면 산에다 묻지 말고 강가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합니다. 아들 청개구리는 엄마 청개구리의 유언만은 지키기 위해 엄마의 시신을 강가에 묻었습니다.
우리는 유언을 중시(重視)합니다. 부모가 살아생전에는 부모의 말을 거역하고 무시하다가도 유언만큼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 유언이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유언에 집착하다보면 보다 중요한 것을 그르치거나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교회에서나 여러 단체의 행사에서 유언장 쓰기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심지어 어느 교회에서는 아예 예배당의 좌석에 유언장을 비치해 놓기도 합니다. 물론 유언을 미리 생각해 보는 것도 중요하고, 유언장을 미리 쓰 두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집사님의 말씀처럼 유언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최선의 유언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청개구리처럼 유언에 집착하다가 비만 오면 개굴개굴 울어야 하는 청개구리의 우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간사하므로 생각이 변할 수 있고, 자칫 그 유언 때문에 유족들 사이에 더러운 재산 싸움이 일어 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유언(遺言)과 유산(遺産)
주님은 마지막 십자가 상에서 별다른 유언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의 마지막 말씀은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는 외침뿐이었습니다. 주님의 이 마지막 외침은 성경의 모든 약속(Shindike)을 유언(Diadeke)으로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유언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불효자라도 유언은 누구나 관심을 가집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유언을 통해 주어진 유산을 반드시 차지해야 합니다.
유언은 유언을 한 당사자가 죽어야 효력이 있습니다(히 9:16,17). 유언을 한 사람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그 약속이 수시로 변할 수 있고 조건이 바뀔 수 있지만, 죽은 후에는 누구도 그 약속을 함부로 바꾸지 못합니다. 이제 그 언약은 유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모든 말씀이 주님의 약속이요, 주님의 유언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주님의 이 언약인 성경을 바꾸지 못합니다. 이제 그 언약은 유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의 유언대로 우리는 내세(來世)의 천국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죽음이 두렵지 않은 천국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영웅호걸(英雄豪傑)이나 절세가인(絶世佳人)이라도 죽음을 피해가지 못하고, 도망할 수도 없습니다. 죽음 앞에 남녀노소(男女老少)나 빈부귀천(貧富貴賤)의 차별이 없습니다. 그 죽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삶과 죽음이 결국 한 걸음입니다(삼상 20:3).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죽음을 생각해야 하고, 유언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유언이 무슨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살아온 삶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유언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이 땅에 이민을 와서 힘들게 살아가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게 당당하게 살아온 삶이 유언이 되어야 합니다. 가진 것도 없고 불편한 것도 많았지만,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삶이 우리 자녀들에게 유언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인 성경을 유언으로 지켜온 신앙의 삶이 최고의 복된 삶이라는 사실을 우리 자녀들에게 유산(遺産)으로 물려주어야 합니다. 이 유언과 유산의 가치를 믿는다면 우리는 교회 앞에서나 자녀들 앞에서 함부로 살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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