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성육신(Incarnation)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0-09 19:43
조회
394
성육신(Incarnation)
2009-12-14

얼마 전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온 청년이 신세한탄을 하던 생각이 납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서로 다투다 울면서 중얼거리고 있을 때에 이 청년이 아이들을 달래보다가 여의치 않자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어학연수를 온지 2년이 되었지만, 나는 꼬맹이들이 중얼거리는 소리조차도 알아듣지 못하는구나!’ 이 청년의 입장에서는 어학연수를 왔지만, 영어가 잘 되지 않는데 대한 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이런 자조 섞인 말을 했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말은 자기들끼리는 통하지만, 어른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여간해서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발음도 정확하지 않고 어순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이의 말을 모르지만, 아이의 엄마는 아이와 대화에 어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엄마는 아이의 표정만 보아도 아이의 말을 알아듣고, 울음소리만 들어도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는 아이가 태중에 있을 때부터 수많은 대화를 해왔고, 아이 때문에 수많은 아픔과 기쁨의 순간들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지내왔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이와 대화할 때에 자신의 입장보다는 사랑하는 아이의 입장에 서기를 원했습니다. 아이가 지금 무엇을 원할까? 아이가 보채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까? 어떻게 해주면 우리 아이가 건강하고 지혜롭게 자랄까?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나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왔습니다. 이 때문에 엄마와 아이 사이에는 대화에 어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벽창호(pigheaded person)
우리가 대화를 할 때에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은 마치 벽창호(pigheaded person) 와 같아서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같은 문화권에서 같은 말을 쓰고, 동시대에 살면서도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과 대화할 때에는 너무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지끈거릴 만큼 골치가 아픕니다. ‘쇠귀에 경 읽기’라는 말처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 조차 하지 않고, 아예 마음의 문을 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매사를 자기중심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와서 교회를 개척하려고 할 때에 많은 선배 분들이 개척을 만류했습니다. 이곳 교민 사회의 특성과 성도들의 애환을 충분히 이해하고 난 다음에 비로소 목회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 분들의 말씀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여기는 미국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목회할 때의 정서는 버려야 한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같은 동족인데도 말이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교회마다 시끄럽고 신앙의 뿌리마져 흔들리는 성도들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저 나름의 잣대를 가지고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5년이 흐르고 난 다음에 비로소 저들의 심정이 이해가 되고 저들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민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에 미움보다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저들의 입장과 눈높이에서 목회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오히려 저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헨델의 메시야(Messiah of Handel)
하나님께서 이 땅에 수많은 선지자와 왕들을 보내서 당신의 뜻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종들을 죽여버렸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대화가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을 힘써 알자’(호 6:3-6)고 울부짖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패역한 이스라엘을 향해 울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라’라고 부릅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직접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사람의 모양을 취하고 대화가 통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자신을 낮추어서 오셨습니다. 주님 역시 예루살렘을 향해서 우셨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를 스스로 차단하고 신음하는 예루살렘을 향해 우셨습니다.
성탄이 기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말이 통하고 교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눈길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어제 밤에는 The Gwinnett Civic Center에서 열리는 귀넷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The Gwinnett Symphony Orchestra &Chorus)이 공동 주최하는 송년 음악회에 가보았습니다. 작은 딸이 그 곳에서 first Violin을 연주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헨델의 메시야는 그 자체가 웅대한 서사시오, 사랑이 가득한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메시야 공연이 끝나고, 크리스마스 케롤(Christmas Carol)을 연주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의 눈가가 붉어지고 입술이 움직였습니다. 모두들 속으로 Holyday Song을 따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지독한 불황에 맞는 크리스마스인지라 감회가 새로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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