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길과 진리(요14:6)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0-09 20:54
조회
451
길과 진리(요14:6)
2013/12/10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그대로 순종하고 싶어 합니다. 좀 더 기도를 많이 하고, 좀 더 묵상과 성경 읽기 등에 시간을 내고, 좀 더 헌신을 하고, 성령의 권능을 받고 싶어 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듯이 성도들은 간증을 남기고 싶어 합니다. 믿음의 증거들을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영적 목마름과 배고픔을 느끼며 영적 생활의 어떤 원리나 비결을 소개 받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여러분들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일 수 있습니다.

욥과 같은 인내심, 다윗과 같은 깊은 묵상, 솔로몬과 같은 지혜, 다니엘과 같은 명철, 바울과 같은 선교 열정, 사도 요한과 같은 사랑, 요셉과 같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같은 복된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런 삶을 살 수 없을까?” 이런 기도 제목이 없는 분이 없을 것입니다.
[이는 내가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안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보기 때문이라. 오호라,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롬7:22~24). 이 구절은 믿음의 삶, 성장의 삶에서 누구나 한 번씩 뱉어내는 구절들입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아 보기는 고사하고 왜 나는 자꾸 죄에 넘어지고 쓰러지는가?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는 분들이라면 제가 달리 말씀 드릴 것이 없습니다만 영적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필연적으로 겪는 이런 과정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도 아니고, 성경을 읽지 않는 것도 아니고, 기도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성장이 없고 열매가 없을 때 심각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변화를 갈구하지만 변화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영적이 되기를 원하지만, 여전히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으로 머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영적 생활의 어떤 성장 비결이라 할 만한 무엇이 있는 것인가? 믿음이 좋아지는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믿음의 선배들이나 교회사에 나오는 위인들처럼 그렇게 살아 볼 수 없을까? 생각해 봅니다.

언제나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원리도 하나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를, “나는 길이요”(요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단순히 구원받는 길, 하늘로 가는 길, 아버지께로 가는 길 정도로만 이해하고 받아 들여서는 진리의 99% 이상을 놓치는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의 길이시요, 모든 것의 방법이십니다. 사람들이 “다른 방법이 없다(There is no other way), 어찌할 도리가 없다. 어떻게 손 쓸 방도가 없다. 길이 없다. ***가 없다”고 말할 때 그들은 항상 유일한 길(The Way)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과 말에서 제외하는 죄를 범합니다. 주님은 없는 길도 만들어서 길을 내시는 분입니다.
그들이 방법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들 안에 예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방도가 없고, 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없다”고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길이요, 방법이시요, 도리요, 수단이십니다. 예수님이 문제의 해결자이시요, 해답 자체이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친히 “나는 길이요”(I am the way)라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길이란? 방법을 의미합니다. 차안에 Key를 둔 채로 문을 잠갔을 때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감기에 거렸다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암에 걸리면 절망합니다. 왜냐하면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내 힘으로 풀 수 없는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이 되십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있다면 그는 길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가 “영적 성장의 길이 있다면 말해 주십시오.”물을 때,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가 영적 성장의 길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열매를 맺는 비결을 말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열매를 맺는 비결입니다. 승리하는 방법을 말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승리이십니다. 여러분이 찾는 모든 길, 모든 방법, 요령, 수단, 비결의 해답은 “나는 길이요”란 주님의 한 마디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이는 나 없이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 가지는 뿌리에서 공급되는 수분과 양분, 체액을 그대로 받아서 열매를 맺습니다. 다른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가지의 전부는 뿌리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전부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른 무엇이 개입할 수 없고,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5세기경 사막의 성자 안토니오에게 사단일 말했습니다. ‘네가 너를 이기기 위해 3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네가 한 것을 다 했다. 네가 금식, 기도, 성경읽기, 용서를 다 했다. 그러나 너는 네가 한 것 한 가지를 하지 못했다.’ 안토니오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하지 못한 것이 무엇이요?’ 사단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너의 겸손을 도저히 따라할 수 없어서 떠난다.’
사단의 길은 교만의 길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의인은 악인의 꾀를 쫓지 않으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리에 안지 않는 것입니다(시 1:1). 내 마음의 중심에 사단이 자리를 잡으면 오만하게 되고, 주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발견하면 그것이 승리요, 열매요, 안식이요, 기쁨이요, 평화요, 성장입니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는 탄식 속에 발견한 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건져내십니다. 누가 승리를 줍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누가 자라게 합니까?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냥 가지일 뿐입니다. 본체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는 것을 받는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것(요1:17)입니다.
영적 생활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는 삶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주를 위해서 사는 법을 배우긴 합니다만 주님을 통해서(through)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할 경우 큰 어려움과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 자체에 어떤 능력과 효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들으시고 실행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일하기 위함입니다. 기도의 능력이 아닙니다. 기도할 때에 주님에 내 안에 오셔서 나 대신 일하시는 능력입니다. 자신이 성경을 읽고 깨우쳐서, 신학을 배우고 무엇을 알아서 영적 생활을 하는 것 같아도 그런 사람은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승리도 요원합니다. 말씀 공부, 묵상, 암송 등은 주님을 더욱 의지하는 과정입니다. 믿음의 능력이라고 하는 말도 엄밀히 말하면 믿음을 통해 일하시는 주님의 능력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입니다. 이것이 종교와 복음의 차이입니다. 종교는 가르침을 주고 그대로 살라고 말하지만, 복음은 가르침을 주신 후에 우리 안에서 그 일을 행하십니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바로 하나님과 교통하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더 많이 기도하고, 금식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배워도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수두룩합니다. 해 보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것들은 더 많습니다. 이 때 영적 생활의 핵심이 나옵니다. 주님이 길이기 때문에 내 방식을 포기해야 합니다.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은 십자가를 거부하도록 유혹하지만, 속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주님이 오십니다. 주님께 맡기는 것, 육신의 힘과 의지와 지혜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주께서 내 안에서 일하십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많은 가르침과 약속들이 있고,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말씀해 주지만 단 하나도 “너 혼자, 너 스스로 해라”는 명령은 없습니다.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꿈에 본 환상은 사다리였습니다. 주님이 하늘가는 사다리입니다. 주님을 통하지 않고는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진리는 철학으로 논증하고 입증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진리로만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교리, 그리스도가 없는 가르침은 거짓입니다. 성경적 진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분을 통해서만 우리 안에 주어집니다. 우리는 가지일 뿐입니다.

① 은혜는 어떻게 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고전1:4).
② 승리는 어떻게 옵니까?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5:57).
③ 화해의 사역은 어떻게 합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으며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화해하게 하는 사역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고후5:18).
④ 복은 어떻게 받았습니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들 위에 임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통하여 /성/령을 약속으로 받게 하려 함이라.](갈3:14).
⑤ 성령은 어떻게 받았습니까? 그리스도를 통해 받았습니다. [또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 성령님을 풍성히 부어 주셨으니](딛3:6).
⑥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어떻게 지킵니까? 예수님을 통해서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⑦ 필요는 어떻게 공급됩니까? [오직 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영광 가운데서 자신의 부요하심에 따라 너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리라.](빌4:19).
⑧ 우리는 어떻게 불가능을 모르는 믿음의 소유자가 됩니까?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그리스도에게 걸리지 않는 진리가 없습니다. 주님 자신이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요14:6). 누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가장 큰 복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성령이요, 눈에 보이는 것은 성경이다.”라고 한 것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성경의 주제요,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령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시고, 가르쳐 주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들을 우리 안에 이루십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성경과 성령의 일치된 증언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어떤 분이신가? 에 집중됩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인 인간이 만들어낸 그 어떤 것에도 진리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영적 원리와 진리의 핵심은 단연 예수 그리스도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한 채 읽는 성경 읽기와 공부는 그냥 공부일 뿐입니다. 성경의 모든 구절, 모든 단어 하나까지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와 모세 혈관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늘 인식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삶과 생각과 말과 행동 역시 그렇게 연결되어야 함을 말해 줍니다. 이것이 참된 영적 생활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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