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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전투 57주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0-10 11:26
조회
188
장진호 전투 57주년!
2007-12-02

美해병 2500여명 중공군이 4만여 명 숨져

美해병대 등 1만명과 12만 중공군이 영하 40도의 혹한에서 벌인 2주간의 전투로 美해병 2500여명, 중공군이 4만여명 사망.

이진서(자유아시아방송)


월간조선
57년 전인 1950년 11월27일은 한국전쟁사에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된 장진호 전투가 시작된 날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미국에 있는 장진호 전투 생존자들의 모임을 통해 당시 영하 40도의 지독한 추위 속에서 중공군과 전투를 벌였던 상황들과 그 이후의 얘기를 세 차례에 걸쳐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첫 시간으로 당시 전투에 참여한 미 해병이 묻혀있는 뉴욕의 한 공원묘지를 찾았습니다.

강석희: 여기 있군요. 미 해병 제 1사단 소속 골프 제임스 헨리가 잠들고 있군요. 과거로 돌아가서…

초겨울 부슬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뉴욕 플러싱의 한 공원묘지의 모습은 너무도 평화롭게 보입니다. 바로 이곳에 한국전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장진호에서 지독한 추위와 물밀듯 내려오는 중공군과 맞서 격전을 벌였던 美 해병의 넋을 기리는 추모비가 있습니다. 플러싱 공원묘지 찰스 힐리 소장입니다.

힐리: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50여 분의 참전용사들이 잠들어 있고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등 많은 참전용사들이 안장돼 있습니다. 특히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용사 추모비가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장진호 전투 참전 용사와 그 가족들의 행운을 기원합니다.

미국 동부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뉴욕지역 6·25참전 전우회 강석희 회장은 뉴욕 퀸스와 플러싱 지역에는 장진호 전투에 참여했던 미 해병 제임스 헨리 이외에도 낮선 이국땅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다 죽어간 수백 명의 병사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장진호 전투는 지난 1950년 11월 27일 함경남도 장진호 지역에서 미국 해병대 등 유엔군 1만여 명과 중공군 12만여 명 사이에 벌어진 2주간의 치열했던 전투입니다.

10배가 넘는 중공군을 맞아 완전히 포위당한 상태에서 미 해병 1사단이 주축이 돼 중공군 제9병단과 전투를 벌여 흥남항구에서 국군과 유엔군 그리고 10만 명의 피난민을 무사히 이남으로 철수시킬 수 있었습니다. 최근 남한에서 ‘얼어붙은 장진호’란 제목의 소설을 펴낸 고정일씨는 ‘초신 퓨’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고정일: 사람들이 ‘초신’ 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일본 사람들이 일본 발음으로 붙이고 우리는 장진호라고 읽어야하겠죠.

전쟁이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지난 1983년부터 장진호 전투 생존자 모임인 초신퓨(Chosin Few)라는 단체를 만들어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뉴욕지역 초신퓨 회장 댄 브랜디씨는 장진호에서의 살인적인 추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합니다.

브랜디: (The battle was fought in the mountainous terrain of n.korea in sub-zero winter conditions along and in the hills...)

"전투는 협곡에서 있었는데 기온이 영하 수십 도로 떨어져 우리는 적과 함께 혹독한 추위와도 싸워야 했습니다. 중공군이 포위한 장진호 협곡지역은 전차의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아주 좁은 곳입니다. 미 해병 제1사단은 이 협곡을 돌파해 76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흥남항까지 성공적으로 철수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이 전투에서 연합군은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중공군의 피해는 10배나 더 컸습니다. 부상자들은 모두 동상에 걸려 고생이 심했고 얼어 죽은 중공군들도 무척 많았습니다."

장진호의 수은주는 밤이면 영하 40도로 내려갔고 시속 60km의 강풍은 체감 온도를 더욱 떨어뜨렸습니다. 뉴욕지역 초신퓨 회장 댄 브랜디씨는 최근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문제해결을 위해 미국과 북한의 접촉이 빈번하게 열리고 있다며 미국 정부가 알아서 하겠지만 한국전 당시 행방불명되거나 전사한 전우들에 대한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고 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브랜디: (I would want two things back from n.korea before we make any kind plans with them...)

"저는 북한과 어떤 협상을 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두 가지를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북한과의 협상에서는 첫째는 한국전쟁에 중에 사망하거나 실종된 우리 전우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받아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북한에 묶여있는 우리 함선을 미 해군에 돌려줄 것을 요구하는 겁니다. 제가 만약 북한과 협상할 수 있는 어떤 위치에 있다면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북측의 답변을 듣기 전에는 어떠한 협상도 하지 않을 겁니다."

미국은 지난 1996년 북한과 공동으로 실시한 미군 유해발굴 작업으로 33구의 유해를 가족 품으로 돌려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년 전부터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면서 북한 지역 내 미군 유해발굴은 중단된 상태입니다. 미국 정부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한국전 당시 한반도에서 숨진 미군은 3만4000여 명으로 이 가운데 아직도 생사여부를 알 수 없는 실종 미군의 수는 8000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미 해병대 1사단은 장진호 전투에서 수송기로 철수하지 않고 부대 건제를 유지하면서 지상철수를 하며 중공군 제 9병단 10개 사단 중 7개 사단을 궤멸시키는 전과를 올립니다. 하지만 이 전투로 美해병이 2500여명 중공군이 4만여 명이 숨졌습니다.

뉴욕지역 6·25참전 전우회 강석희 회장은 오늘의 남한이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유엔 22개 나라 젊은이들의 피로 지켜낸 성과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강석희: 우리 한국에서 젊은이들은 자유분방하고 호강하고 있죠. 경제적으로도. 그런데 이러한 자유를 누리고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유를 지키는 군사적 힘이라든가 희생이 따르는데 그 희생 없이는 자유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혹독한 추위, 중공군의 기습에 대항해 싸웠던 장진호 전투에서의 미 해병들, 먼 타국 땅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젊음을 바친 그들의 숭고한 정신은 한국 전쟁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입력 : 2007-11-27, 10:08
출처 : 자유아시아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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