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

인류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토지개혁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0-10 12:57
조회
239
UN과 세계은행과 IMF에서는 세계의 빈곤 타파(poverty eradication)를 위해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지만, 대체로 1990년대까지만 해도 고압적이었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맞아 서구는 기고만장했다. 생산성(productivity) 향상에 의한 질적(質的) 발전이 아니라 생산요소(factors of production) 투입에 의한 양적(量的) 발전이 초래한 필연적 결과라며 비아냥거렸던 것이다. 소방관으로 긴급 투입된 IMF의 관료는 한국과 태국 등에서 점령군처럼 굴었다. 그보다 30년 전에 영국이 외환위기로 IMF로부터 긴급구조기금을 받은 것과 동일한 현상이었지만, 무역적자인 상태에서 무리하게 통화를 방어하면 선진국이든 개도국이든 신흥부국이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균형점을 찾아가는 동일한 현상이었지만, 서방 선진국과 그들의 꼭두각시인 세계은행(IBRD)과 IMF는 영국과 한국을 완전히 분리해서 다뤘다. 국내에서는 때마침 정권교체 시기라서 야당은 눈앞에 어른거리는 대권에 환호작약하면서, 장례식에서 꽹과리 울리는 격으로 IMF 높으신 나리 앞에서 굽실거리며, 김영삼 정부만이 아니라 멀리 박정희 정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가차 없이 매도했다.


서구 선진국을 내심 당황하게 한 것은 아시아의 2대 경제강국 일본과 중국은 끄떡도 없었다는 것이다. 국제 투기꾼들이 홍콩 달러도 사정없이 공격했지만, 오히려 제 손에 피만 가득 묻히고 깊은 내상까지 입고 비 맞은 개처럼 꼬리를 말고 사라졌다. 대만과 싱가포르도 끄떡없었다.


한국은 환율이 현실화되자, 곧바로 가격경쟁력이 생기자, 바로 세계 5위 제조업이 떨쳐 일어나 1년 만에 무역흑자 400억 달러를 달성했다. 위기를 호기로 삼아, 한국의 대기업은 독재자 김정일에게 바싹 긴 대기업 외에는 모조리 악의 원흉으로 내몰렸지만 묵묵히 전광석화처럼 구조조정을 단행해서 10년 만에 중화학과 전자산업에서 우르르 일본을 위협했다. 생산성이 눈부시게 향상되어, 이제는 삼성전자 한 기업이 일본의 30년 전자 왕국을 상대하고도 남는다. 미국의 자랑 애플도 대통령의 거부권 바짓가랑이에 에오라지 매달리게 만들었다.


중국은 그 사이 대붕의 날개를 펼쳤다. 무지막지한 무역흑자로 미국과 EU에게 아시아 외환위기보다 수백 배 큰 금융위기를 선물했다. 중국의 무차별 수출에서 피해를 입지 않은 나라는 제조업이 걸출한 독일밖에 없다.


새 천 년을 맞아, 서구는 교만의 수염을 스스로 뭉텅뭉텅 잘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면 우리처럼 잘살게 된다.’는 공식을 더 이상 고수할 수가 없었다. 한국의 놀라운 복원력에 이은 눈부신 질적 성장과 중국의 무시무시한 발전에 맞는 공식을 찾아내야 했던 것이다. 한국의 유신체제보다 최소한 10배 가혹한 중국의 공산체제 하에서 어떻게 저런 발전이 가능할까. 언젠가 중국도 격심한 구조조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중국의 경제적 위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30년 안에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아첨도 서슴지 않는다.


2006년판 세계은행의 세계 경제발전 보고서(World Development Report)는 경제발전과 토지개혁의 상관도를 보여 준다. 이에 따르면, 1960년에서 2000년까지 40년 동안 토지개혁을 잘한 나라일수록 경제성장률이 높았다. 단연 돋보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과 대만과 중국이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토지개혁이 가장 잘 되어 토지의 지니계수가 가장 낮다. 공산국가인 중국보다 토지가 공평하게 분배되었다는 말이다.

이 그래프에 따르면, 토지개혁 당시 토지지니계수가 대략 한국은 0.35, 중국은 0.37, 일본은 0.42, 대만은 0.46, 태국 0.47이다. 경제성장률은 대만, 한국, 중국, 태국, 일본의 순서로 높다. 공산국가인 베트남의 토지지니계수도 한국보다 훨씬 높은 0.57이다. 경제성장률은 베트남이 일본과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아시아 최대의 민주국가로 알려졌지만 인도는 토지지니계수가 베트남과 비슷하다. 위에서 보면 아프리카나 중남미 국가들은 토지지니계수가 모두 0.6을 넘는다. 약 0.8이 평균치다. 식량기구(FAO)에 따르면, 토지지니계수는 1990년 기준으로도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낮은 0.34다. 한국보다 나은 나라는 핀란드 0.26밖에 없다. 프랑스 혁명에 뒤따른 토지개혁 외에는 토지개혁이 아예 없었던 유럽은 대체로 토지의 불평등지수가 매우 높다. 그나마 프랑스가 0.53으로 낮은 편이고, 영국 0.67, 독일 0.68, 이태리 0.78, 스페인 0.86이다. 미국도 매우 높아 0.74다. 소득의 지니계수가 0.5를 넘으면 심각한 사회불안으로 나라 전체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뒤숭숭해지는데, 마찬가지로 농업이 주산업인 개도국에서는 토지의 지니계수가 0.5가 넘으면, 한 나라 안에 두 국민 즉 지주와 소작농이 늑대와 양의 관계를 이룰 수밖에 없다. 개도국에서는 산업화의 선제조건이 토지개혁이다. 그래야만 평등해진 국민이 동질감을 갖고 경제발전에 동참할 수 있다.


(서구에서는 농업의 비중이 5% 이하이므로 토지의 불평등이 0.7을 넘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그렇게 되면 기업농의 확산으로 국제경쟁력을 갖게 되니까, 장려되어야 한다.)


잠깐, 주의할 게 있다. 공산국가의 토지개혁 문제다. 거기는 왜 적으면 수십만, 많으면 수백만 수천만 명을 살해하면서 강행한 피의 토지개혁이 모조리 실패했을까. 그것은 협동농장을 만들면서 농민을 사실상 국가 노예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토지의 경작권만 보장했을 뿐 토지를 사고 팔 소유권은 물론 이익을 처분할 권리도 박탈당했기 때문에 그 이전의 봉건사회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은 토지개혁 후 약 30년 후의 일이다. 1978년 안휘성에서 목숨을 걸고 시작된 농민의 자의적인 이익 처분권을 등소평이 전국적으로 인정해 주면서(2차 토지개혁), 비로소 농업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제조업에서도 노동자에게 생산성에 걸맞은 적정 임금을 지불하면서, 중국이 한 세대 만에 세계의 공장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베트남과 쿠바도 마찬가지다.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소련의 몰락으로 그들 두 공산국은 어쩔 수 없이 각각 1986년과 1993년에 농업시장을 허용하고 농민에게 이익 처분권을 넘겨주었다. 베트남은 이내 식량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신하여 농민의 입이 귀에 걸렸고, 쿠바는 식량 수입 50%에서 40%로 줄일 수 있었다. 쿠바는 여전히 사탕수수 등 경제작물에 치중하느라 아직 식량의 해외 의존도가 높다. 카스트로의 토지개혁으로 절대 빈곤은 면했지만, 식량 수입은 그 이전의 33%에서 오히려 늘어났다. 토지의 대부분이 국유화되면서 소련의 석유와 농기계와 비료에 의존하여 농장의 규모만 커졌을 뿐 생산성은 도리어 떨어졌던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과 쿠바는 여전히 농민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왜? 소유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옆에 거대한 공업단지가 들어서면 그냥 쫓겨난다. 한국 같으면 이승만의 토지개혁 덕분에 소유권이 있어서 수십 억 원을 예사로 보상 받을 수 있지만, 개혁개방으로 콧노래를 부른다고 하지만, 그들은 그런 횡재를 꿈도 못 꾼다. 소유권이 없으니까! 개발이익은 공산당이 독점해 버린다.

1999년 엘고네미(M. Riad El-Ghonemy)는 UN의 사회개발연구소(UNRISD)에서 ‘시장경제적 토지개혁의 정치경제’(The Political Economy of Market-Based Land Reform)란 논문을 발표했다. 이것은 토지개혁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논문이다. 얼마나 많은 농민이 얼마나 많은 토지를 분배 받았는지를 조사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이 단연 세계 1위다. 겉보기에는 중국이 1위로 90% 농민이, 전체 국가 토지 중 80%를 분배받았다. 한국은 2위로 각각 76%, 65%이다. 쿠바가 3위로 각각 60%, 60%이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중국과 쿠바는 토지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그것은 반의반 쪽짜리 토지개혁에 지나지 않는다. 1960년대 중반만 해도 박정희는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이라고 필리핀의 마르코스한테 노골적으로 무시당했는데, 필리핀이 왜 불과 10년 후부터 한국에게 상대가 안 되었는지 토지개혁을 보면 알 수 있다. 토지개혁을 외치는 노예의 합창은 하늘을 찔러서 1972년, 1988년, 1994년 이렇게 세 번에 걸쳐서 토지개혁 흉내를 냈지만, 혜택을 받은 필리핀 농민은 고작 8%에 분배된 토지는 10%에 지나지 않는다. 인도도 1953년부터 1979년까지 줄기차게 토지를 개혁했지만, 혜택 받은 농민은 4%, 분배 토지는 3%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지식인은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빛나는 토지개혁에 대해서 대부분 왜곡된 정보를 불변의 진리로 착각하고 있다. 교과서부터 모조리 엉터리다. 고졸 학력이라도 되면, 한국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토지개혁에 대해서 불완전한 토지개혁이라고 잘근잘근 헐뜯음을 똑똑함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면서 북한의 무상몰수 무상분배에서 열등감을 느낀다. 자신도 모르게 김일성 왕조에 면죄부를 주고, 꿈속에서 김일성 왕조를 사모하고, 평양의 아리랑쇼에 넘어갈 만반의 자세를 취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보고 부르르 떨며 스스로 의식화된다. 처음에는 연간 30%의 소작료를 받아가다가, 1958년부터는 아예 이익 처분권을 빼앗아가면서 소작료가 연간 90%에 이르렀다는 것은 조정래와 그 패거리들은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고작 연간 30%에 해당하는 소작료를 5년만 내면 농민은 경작하던 땅을 영원히 자기 소유로 등기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15할의 원칙’이다. 토지개혁을 단행하지 않았으면 소작료로 연간 40% 이상 내야 했지만, 그나마 경작권도 보장 받지 못했지만, 그보다 10% 적게 그것도 5년만 받고 농민의 소유로 만들어 준 농업혁명이 이승만의 토지개혁이었다. 형식적으로도 토지계수가 0.34가 되는 거의 완전평등에 이르렀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겉똑똑이들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거니와, 30% 소작료를 5년만 내면 곧바로 소유권을 인정받았으니까, 그것은 알고 보면 소작농이나 소작농과 다름없는 자작농이 전 세계에서 최소 3천 년간 꿈속에서도 주위를 살피며 말하거나 이승을 떠나면서 아무도 안 들리게 고래고래 외쳤던 개혁이었다.

토지개혁으로 한국인은 비로소 한 나라 한 겨레가 될 수 있었다. 그런 바탕이 갖춰졌기 때문에, 누군가 제대로 된 지도자가 나와서 깃발만 흔들어도 산업화 역군이 구름같이 몰려들 만반의 준비가 갖춰졌기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 다름 아닌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2013-08-12
전체 75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추천 조회
65
우리만 몰랐다!
관리자 | 2019.10.10 | 추천 0 | 조회 340
관리자 2019.10.10 0 340
64
유대인, 고난과 핍박의 역사
관리자 | 2019.10.10 | 추천 0 | 조회 284
관리자 2019.10.10 0 284
63
중국의 부상과 붕괴
관리자 | 2019.10.10 | 추천 0 | 조회 279
관리자 2019.10.10 0 279
62
암적 존재
관리자 | 2019.10.10 | 추천 0 | 조회 237
관리자 2019.10.10 0 237
61
이런 사람도 있다
관리자 | 2019.10.10 | 추천 0 | 조회 225
관리자 2019.10.10 0 225
60
커피 공화국
관리자 | 2019.10.10 | 추천 0 | 조회 223
관리자 2019.10.10 0 223
59
각골명심(刻骨銘心)해야 할 ‘금슬상화(琴瑟相和)’
관리자 | 2019.10.10 | 추천 0 | 조회 267
관리자 2019.10.10 0 267
58
지혜로운 유대인들에게 배워야할 자녀의 훈육방법
관리자 | 2019.10.10 | 추천 0 | 조회 242
관리자 2019.10.10 0 242
57
인류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토지개혁
관리자 | 2019.10.10 | 추천 0 | 조회 239
관리자 2019.10.10 0 239
56
미군 주둔국 현황
관리자 | 2019.10.10 | 추천 0 | 조회 256
관리자 2019.10.10 0 256